매킨토시의 출시를 알리는 광고 "1984." 80년대 최고의 광고작 중 하나로 뽑혔으며, 오늘날에도 광고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꼽히는 이 광고는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광고를 통해 처음 선보여 매킨토시의 등장을 전세계에 알림. (광고를 보려면 이미지를 클릭.)

이 매킨토시 광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배경으로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이 감독한 작품. IBM을 상징하는 "1984"의 빅 브러더(Big Brother)가 매킨토시를 상징하는 한 여성에 의해 파괴되는 장면을 그린 이때의 광고는 오늘날 광고 역사의 '고전'으로 남아있다.


1984년 애플 컴퓨터에서 출시한 매킨토시(Macintosh)는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GUI-마우스 기반 컴퓨터였음. 기존의 PC들은 모두 새까만 화면에 문자열을 입력해야 작동하는 방식이었으나, 매킨토시는 아이콘으로 표시된 예쁜 화면에 마우스 커서로 컴퓨터에 명령하는 GUI(Graphic User Interface) 방식으로 PC 업계 대혁신을 이뤄냈다.

위 사진에서 보는 최초의 매킨토시는 128k 램에 모토로라 68000 마이크로프로세서, 그래픽 프로그램인 맥페인트(MacPaint), WYSIWYG 워드프로세서 맥라이트(MacWrite)와 같은 애플리케이션 패키지가 기본 설치돼 있었음. (당시엔 별다른 모델명도 없었다. 그냥 "매킨토시"로 출시됐다.) 가격은 2500달러.

매킨토시는 원래 제프 라스킨(Jeff Raskin)이라는 엔지니어가 고안한 컴퓨터 이름으로, '보다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사용법을 배울 필요 없는 컴퓨터'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매킨토시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컴퓨터였는지는 몰라도 일반인들에게 '실용적'인 컴퓨터는 아니었다. 출시됐을 당시 매킨토시에는 경쟁력을 갖춘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 같은 핵심적인 애플리케이션이 없었다. PC의 실수요자를 고려치 못했던 매킨토시의 초기 버전은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한다. 


이후 매킨토시를 시장에서 구원한 것은 1985년 앨더스(Aldus) 사에서 개발한 페이지메이커(PageMaker)였다. WYSIWYG 기술을 이용한 최초의 데스크 탑 출판 프로그램, 페이지메이커의 등장은 매킨토시를 전자출판 사업의 핵심적인 도구로 만들어 준다. 매킨토시에 페이지메이커를 설치하고 애플과 어도브(Adobe)가 공동 개발한 레이저 프린터를 연결하면 바로 훌륭한 데스크 탑 출판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IBM 호환 PC에서는 상상조차할 수 없었던 전자 출판 시스템, 페이지메이커는 단숨에 매킨토시의 대박 애플리케이션으로 급부상하면서 매킨토시의 매출을 크게 높여준다.

이때부터 애플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1985년 이후, 매킨토시는 PC 시장의 '제 2의 플랫폼'으로 등장하면서 한때 전세계 PC 시장 점유율 15%를 기록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킨토시의 전성기는 일시적이었다.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 컴퓨터의 이사회는 연이어 무능하고 (심지어 무책임한) CEO들을 영입했고, 매킨토시의 경쟁력은 급락하기 시작한다. 이후 매킨토시는 10년 이상 대기업 조직에서 일하던 CEO들에 의해 관리된다. 이들의 경영관리 하에서 매킨토시 제품은 과거의 개성이 크게 희석됐고, 윈도 기반 PC들과 차별화 되지 못했다.

애플은 한 마디로 최악의 마케팅 기업이었다. 애플은 시장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신기술들을 연이어 발표했고, 나오는 제품마다 실용성은 떨어지면서 가격은 경쟁사 제품보다 비쌌다. 게다가 애플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사업 어느 한쪽에도 집중하지 못해 다른 기종과의 호환성과 협력 관계를 꾀하지도 못했다.

80년대 후반에 등장한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 매킨토시 디자인의 우수성을 보여준 컴퓨터이면서 동시에 형편없는 실용성을 보여준 컴퓨터이기도 했음.


급락하는 매킨토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출시된 80년대 후반 매킨토시의 주력모델 LC. low-cost를 뜻하는 값싼 제품이라 광고를 했으나 다른 IBM 호환 경쟁사들의 제품에 비해 결코 싼 가격도 아니었다.



매킨토시 쿼드라 시리즈. 모토로라의 68-계열 프로세서 제품으로는 최후의 기종이었음. 엄청난 가격과 지독한 비호환성을 자랑했음. 특히 메모리 등 확장 부품/기기 가격이 너무나 비싸 '이 컴퓨터를 운영하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돌았음.


급기야 1990년대 애플 컴퓨터는 시장에서 “멸종”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린다. 1993년부터 출시하는 제품마다 실패를 거듭했으며, 1996년 1/4 분기에는 7억 40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손실을 기록한다.

동영상 재생 기술인 퀵타임과 VR(Virtual Reality) 알고리듬 등, 경쟁사들보다 수년이나 앞선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애플은 계속된 시장 점유율 하락과 적자 누적으로 시들어 가고 있었다. 


매킨토시, 인텔-윈도우 시스템과 통합을 꾀하다

이런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애플 컴퓨터는 IBM과 함께 IBM 호환 기종과 애플 매킨토시 두 가지 플랫폼에서 작동되는 새로운 OS, "핑크(Pink)"를 비밀리에 계획한다.

핑크는 애플의 맥 OS 7.0에 기반해 만들어진 운영체계로, 서로 다른 하드웨어에서 동작이 가능했을 뿐 아니라, 완벽한 객체지향 개발 환경을 제공했다. 개발자들은 핑크 OS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마치 블록을 쌓듯이 객체들을 연결하고 구축할 수 있었으며, 완성된 '블록'은 PC나 메인프레임 어디에서나 이용될 수 있었다.

당시 애플은 매킨토시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로 전환하기로 결심했었다. 이를 위해 새로운 '크로스-플랫폼' OS인 핑크를 개발해 IBM과 연합을 제의했던 것. IBM 역시 크로스 플랫폼과 객체지향 OS 소프트웨어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고, 이것이 애플의 이해 관계와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핑크의 완제품은 끝내 출시되지 않는다. 다만 애플에서 3년간 시험 제작을 했을 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파워PC였다. 
 

IBM, 애플, 모토로라, PC 시장에서 점차 비주류로 밀리고 있던 이 3개의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인텔 연합에 맞서기 위해 파워PC 칩이라는 비장을 무기를 개발한다. 

IBM, 모토로라, 애플이 파워PC 동맹을 맺고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에 돌입. IBM과의 "크로스-플랫폼(cross-platform)" 계약에 의해 탄생한 3자 동맹은, 3년 뒤 애플 컴퓨터의 "파워PC(PowerPC)" RISC 기반 프로세서를 개발한다.


 


 

파워맥(PowerMac)의 1990년대 버전(상), 2000년대 버전(하). 파워맥은 애플 컴퓨터가 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라이센스를 판매한 제품이었음. 그러나 PC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려는 이런 시도는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애플은 라이센스 정책을 포기함.

 

파워PC 칩을 탑재한 매킨토시는 펜티엄 칩을 위시한 윈텔(Wintel: Windows 운영체계와 Intel 칩을 탑재한 컴퓨터) 기종과 시장에서 맞서게 됨. 그러나 파워 매킨토시는 우수한 파워PC 칩 성능에도 불구하고 기존 매킨토시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 부족, '네이티브(native)' 애플리케이션의 부족으로 기대했던 것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함.

 

같은 해 애플은 매킨토시 OS를 다른 컴퓨터 기업에게 라이센스 계약해 사상 처음 매킨토시 클론 기종의 탄생을 가져옴. 맥OS 라이센스 전략은 줄어드는 매킨토시의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취해진 조치였으나 애플 측의 지나친 규제로 겨우 2-3곳의 회사만이 매킨토시 클론 기종을 생산할 수 있었음.

 

그 중 가장 성공적인 맥 클론 제조 업체는 파워 컴퓨팅(Power Computing). 한국인 벤처 사업가인 스티브 강이 설립한 파워 컴퓨팅은 연일 컴퓨터 잡지에서 가장 우수한 맥 클론 기종으로 격찬을 받으며 매킨토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나갔다.

 

파워PC와 맥OS 라이센스 전략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시장 점유율과 수익은 계속 하락함. 1995년 말 애플은 68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1996년 1분기엔 7억 4000만 달러의 손실을 보고함.


매킨토시, 다시 한번 반짝?

비현실적인 사업 안목에 온갖 전횡으로 애플에서 쫓겨났던 창립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1997년 애플 컴퓨터의 임시 CEO로 돌아오면서 애플은 국면 전환을 꾀하기 시작한다.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전국에 애플 컴퓨터 직영 매장을 설립해 직접 마케팅에 나섰고, 특히 1998년 출시된 아이맥은 1년간 200만 대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리며 1998년 하반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컴퓨터 기종이 된다.





컴퓨터 왕초보들을 겨냥해 출시된 iMac 시리즈. 애플 컴퓨터 사상 가장 과감한 저가 중심 정책으로 iMac은 시장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반향을 얻어냄.

매킨토시는 이 제품으로 만성 적자와 시장 퇴출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시장 점유율은 윈텔 진영에 계속적으로 밀렸다. 급기야 한때 15%를 웃돌았던 PC 시장 점유율은 2% 미만으로 추락했고, 매킨토시는 이제 진지하게 '멸종'의 위기에 대해 고민해야 할 순간을 맞는다.


매킨토시, 인텔/윈도우 컴퓨터로 흡수되는가?

2006년 1월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맥월드 엑스포에서는 바표된 새로운 매킨토시. 맥북 프로(MacBook Pro)는 인텔 CPU를 채택한 최초의 매킨토시였다.

분명 매킨토시 노트북이긴 하지만, 이 안에는 인텔 칩이 내장돼 있다. 말인즉, 사용자는 이 매킨토시에 윈도우를 깔고 윈도우 기반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간 윈도우 용으로만 출시됐던 각종 게임들, 사무용 애플리케이션, 멀티미디어/인터넷 소프트웨어까지. 이론상 매킨토시 사용자는 매킨토시의 우수한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그리고 윈도우 애플리케이션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인텔 CPU를 장착한 매킨토시에 맥OS와 윈도우 듀얼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006년 2월 작성된 글로 현재와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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